[지금 스페셜아트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단체의 인권운동을 통해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장애인의 날은 1981년 제37회 유엔 총회에서 <장애인에 관한 세계행동계획>을 채택하면서,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한 것에서 기원합니다.
한국도 '장애인의 해'를 맞아 4월 20일 '제1회 장애인의 날' 행사를 주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장애인 재활대회'라는 이름으로 기념식만을 이어오다가, 1991년 <장애인복지법>,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제.개정하면서 '장애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공식지정 되었습니다.
장애인의 날 주간을 맞이하여, 장애예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장애를 가진 미술작가를 발굴, 육성해 온 스페셜아트 김민정 대표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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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은 '가능성'이 아니라 '가치'
“장애인도 예술을 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긍정의 언어지만, 여전히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고’, 장애인은 그 바깥에 있다는 인식입니다. 그 결과 장애예술은 종종 장애 극복의 산물로 소비되고, 작품의 완성도나 미학적 가치는 뒤로 밀려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장애예술가를 만나며 확인하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장애예술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예술입니다. 장애예술가는 누군가의 응원을 받는 존재 이전에,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입니다.
표현 방식이 다른 것이 예술의 본질
예술의 본질은 다양한 감각과 방식의 표현 위에 존재합니다. 정교한 묘사, 강렬한 색, 또다른 반복과 리듬으로 세계를 드러냅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들의 작업은 이러한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도권 교육의 규범에서 벗어난 표현, 집요하게 반복되는 형태, 자기 기준에 따라 완성을 정의하는 태도. 이것은 결핍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창작 구조입니다. 이것을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복지가 아니라 '예술 생태계'가 필요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결론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개인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속의 조건입니다. 발달장애 예술가들은 창작 공간, 전시 기회, 작품 유통, 최소한의 소득 등을 확보하지 못해 중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업 지속의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예술 활동은 ‘경험’으로 끝납니다.
지금까지는 이 환경을 개인과 가족이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작업 지속 환경을 만드는 일은 사회시스템의 영역입니다. 장애예술가 지원을 복지의 틀로 접근할 경우, 예술가로서의 성장과 자립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시혜적 지원이 아니라 예술 생태계 안에서의 위치를 만드는 일입니다.
질문을 바꿔야 할 이유
발달장애 예술가 발굴.양성은 개인의 재능을 키우는 것을 넘어섭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사회가 예술을 바라보는 기준을 확장하는 과정입니다. 적절한 환경과 시간이 주어질 때, 이들은 멈추지 않고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제는 “장애예술이 지속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장애예술가가 동등한 창작자로서 오래 작업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장애예술가의 세계가 확장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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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아트 작가 이야기]
스페셜아트 소속 작가들은 어떻게 그림에 입문하고 작가가 되었을까요? 평소에 작가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며,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작가가 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리가 펼쳐지니, 가만히 귀를 기울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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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그림 김지호 작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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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장은 빠르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김지호 작가의 그림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김지호 작가는 올해로 데뷔 7년 차 작가입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부터 스페셜아트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여 작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사실 그림은 더 오래전부터 지호 작가의 삶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초.중.고교 시설 내내 교내 미술대회에서는 항상 상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그림은 ‘형태를 묘사하고 색칠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그림은 ‘계속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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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살 무렵의 여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꼬마 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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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지호에게 미술은 "장애아동 미술치료"로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술치료*는 그림 그리기, 색종이, 찰흙 등 다양한 도구를 매개로 하는 미술활동을 통해 심리적 안정, 소근육 발달, 성취감 향상 등을 돕습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동의 경우에는 사회적 의사소통 문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시각과 촉각을 통한 감각적 경험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지각 능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어린 지호에게 미술치료는 유용한 활동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다른 치료나 수업은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모두 중단했지만, 미술활동은 지금까지도 놓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 미술, 음악 등 예술치료(art therapy)는 창의적인 심리적 중재(creative psychological intervention)라고도 합니다. 심리치료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경험하게 합니다. 심리치료의 일환으로서 예술치료는 예술이 갖는 특성으로 인해 유연하고 편안한 태도, 더 나은 자기 이미지(self-image), 의사소통 및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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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작가는 자연과 생명을 오래 바라보는 것에서 작업의 첫단추를 끼웁니다. 지호 작가는 꽃, 풀, 나무 같은 자연의 요소들을 화면에 그대로 재현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눈을 통해 관찰의 시간을 거쳐 특정한 구도로 다시 배치됩니다. 단순한 풍경 묘사나 정물의 재현을 넘어, 자연을 이루는 구조와 리듬을 촘촘한 질감과 따뜻한 색의 호흡으로 체험하게 만듭니다.
서두름이 없이 천천히 쌓인 색의 층위는 생명과 환경에 대한 애정을 조용히 기록하며, 차분하고 단단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작품은 '자연을 그린 그림'을 넘어 '자연과 함께 호흡'한 시간의 기록으로 남습니다.
지호 작가의 그림에는 유독 꽃이 자주 등장합니다. 왜 꽃을 그리는지, 정확한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집안 실내, 사는 동네 등 일상생활 주변에 다양한 꽃과 식물이 만발해 있습니다. 화면 위의 꽃들은 하나의 종(種)이자 하나의 사건처럼 등장하고, 배경의 색면은 유기적 환경을 형성하는 데이터처럼 작동합니다. 조용히 관찰하고, 느리게 기록하고, 꾸준히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작은 존재들의 삶을 회화라는 언어로 번역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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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스페셜아트 <SKYWALK> 작가 소개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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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작가의 그림에는 반복이 있습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고.... 하나의 화면을 채워나갑니다. 확대해서 보면 더 선명해지는 그림.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리듬. 그 반복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지호 작가만의 언어가 됩니다.
두텁게 쌓아 올린 물감의 질감은 생명이 움직이는 표현을 촉각적으로 되살려냅니다. 화면 전체에 반복적으로 더해지는 거친 붓질과 재료의 질감은 시간의 층위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자연을 향한 작가의 느린 호흡을 담아낸 기록이 됩니다.
이는 단순해 보여서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 반복에는 일정한 힘과 리듬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가족도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이 반복이야말로 지호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표현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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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무제11〉, 2021, 캔버스에 아크릴, 72.7 x 72.7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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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작가는 자신이 작가라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일단 스페셜아트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루라도 스페셜아트에 가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압니다. 대단한 목표가 아니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채워갑니다. 자신의 그림을 보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완성”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림을 끝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아무리 완성이라고 말해도, 자신의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고 계속 그립니다. 자신의 그림이 완성되었는지 스스로 판단합니다. 한 번 시작한 선, 한번 반복하기 시작한 형태, 지호 작가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부칩니다.
이 고집은 때로는 어려움이 되지만, 작업에서는 분명한 힘이 됩니다. 지호 작가에게 그림은 타협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은 그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진지한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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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스페셜아트 작업실에서 작업에 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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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작가는 스페셜아트에 오면 대표님, 선생님들에게 고유한 루틴에 따라 인사를 합니다. 여기서 고유한 루틴이란 인사를 하는 대상이 반드시 스페셜아트 실내에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똑같은 사람인데도 실외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스페셜아트에 오는 길에 만난 선생님에게 이미 인사했는데도, 스페셜아트 사무실에 도착하면 또 인사를 합니다. 약간 상기된 듯한 얼굴 표정과 목소리로 나즈막히 "안녕하세요!!"라고 건넵니다.
이런 독특한 인사 루틴은 학령기 떄도 작동하였습니다. 학생 지호는 올해 자신의 선생님한테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선생님이 아니면 인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했던 선생님이라도 학년이 바뀌면 절대 인사하지 않습니다. 반면 올해 자신의 선생님한테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합니다. 다행히 지호 학생의 이런 인사법을 고유한 특성으로 수용하는 선생님들은 전혀 섭섭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민망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지만, 지호 작가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지호 작가를 만났는데 인사하지 않는다면, 버릇이 없는게 아니라 '작가의 인사 프레임에 편입되지 않았구나' 여기세요.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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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작가의 히루는 단순합니다. 평일 오전에는 스페셜아트에서 그림을 그리고, 오후에는 집 주변, 오가는 길의 공원에서 산책을 합니다. 먼 훗날 자립생활을 할지도 모르므로, 대중교통 이용 등 일상생활 훈련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언니와 함께 미술활동을 합니다. 언니는 예술 전공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미술대학에 진학시키라는 권유를 받았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미술은 늘 지호 작가의 삶을 지탱하는 도구였지만, 그것이 ‘직업’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호 작가는 스페셜아트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불안해할 정도로, 그에게 이제 그림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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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작가의 삶은 분명히 말합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다르게 반복해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기다림이 결국 변화를 만든다는 것.
지금, 그의 그림을 한 번 더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시간을 함께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작가에게 가장 큰 응원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지호 작가는 "제 그림을 보면서 여러분도 항상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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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야기, 가족]
작가로서 계속 작업을 하려면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작가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주변 사람들의 몫도 큽니다. 가족은 작가의 가장 든든한 베이스캠프, 치어리더이죠. 스페셜아트 소속 작가의 가족은 작가와 어떻게 일상을 보낼까요? 작가의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묘책을 쓸까요? 작가와 가족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소망할까요? 특별한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는 가족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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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작가의 뒤에는 늘 부모님이 있습니다. 여느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지호 작가의 이야기는 부모님의 이야기 없이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독박육아’ 속에서 치료, 교육, 선택을 혼자 감당해왔습니다. 꼬마 지호가 수면의 어려움이 있어서 함께 밤을 지새우던 나날, 정신과 약물복용의 고민,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의 갈등. 그 시간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대중교통에서 무조건 앉아야 하는 장애아동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 설명해야 하는 순간들, 그럴 때마다 고개 숙이며 사과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내 아이는 내가 책임진다." 스스로 지켜야 했던 양육의 기준. 부모님은 수없이 흔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말합니다.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천천히 따라옵니다.” 실제로 지호 작가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해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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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지호 작가가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장애인복지관에서 보호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얼핏 듣고 스페셜아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도 가르쳐주고 취업도 연계해 주는 곳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부모님은 귀가 번쩍 트였다고 합니다. 그날로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스페셜아트에 연락해서 "우리 지호 좀 테스트 해 주세요"라고 매달릴 만큼 미술교육이 절실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정형편이 악화되어 한달 만에 그만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자녀의 재능을 알지만 충분히 지원해 주고 뒷받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교육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했더라면 더 성장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래도 스페셜아트 대표님과 계속 연락하면서 안부를 전하던 차에, 2019년 [서울형 장애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장애예술교육 전문가와 장애아동.청소년이 함께 예술과 장애의 사회적 가치를 실험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스페셜아트는 '특별한 예술가의 여름캠프'를 통해 장애예술가 10명, 비장애예술가 10명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도록 운영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호 작가는 202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연계고용 일자리로 스페셜아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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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특별한 예술가의 여름캠프]에 참여한 청소년 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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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작가의 부모님은 스페셜아트와의 관계를 '의리'라는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페셜아트 대표님은 작가들에게 일체 부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긍정적인 말만 했다고 합니다. "잘 하고 있어요!!", "좋아지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장애로 인해 부정적인 말, 비난섞인 말에 지친 부모에게 긍정의 언어는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에 목말라 하던 부모님은 난생 처음 선정된 장애인복지관 계절학교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2019년 서울문화재단의 [장애아동.청소년 예술교육사업]에 참여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습니다. 이 사업의 결과공유 전시회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는, 치료수업을 빼먹고 전시회에 참여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전공과*에 어렵게 합격한 행운을 무산시키지 않도록 스페셜아트 대표님은 지호 작가의 근무시간을 조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에 당시의 특수체육 코치로부터 자신의 선배가 운영하는 믿을 만한 장애인일자리로 옮길 것을 권유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지호가 갈 데 없을 때 받아준 곳”이라는 기억은 가족에게 단순한 기관 이상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더 좋은 조건의 기회가 열렸지만, 부모님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를 선택하였고 스페셜아트에 남기로 했습니다. “의리니까요.” "더 좋은 조건이라고 해서 옮겨가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충성이 아니라 지호 작가의 삶을 함께 이어온 시간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의 지호 작가를 만든 중요한 장면입니다.
* 전공과는 특수교육대상자(평균적인 방식으로는 교육이 어려운 학생으로, 천재아동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장애아동을 지칭함)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갈 수 있는 교육과정입니다. 대부분 특수학교에 설치되어 있으며, 취업.진로교육을 2년간 제공합니다. 일부 전공과는 IT, 안마, 제과제빵, 바리스타 등의 자격증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교육과정이 개설되고 있습니다. 전공과는 입학경쟁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실기전형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서 특수교육계의 엘리트 취업반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로 입학이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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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꽃〉, 2020, 종이에 아크릴, 24 x 32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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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위의 꽃병>, 2025, 캔버스에 아크릴, 젤스톤 40.9x31.8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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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작가가 미술일자리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엄격한 원칙에 따라 자녀를 양육한 어머니의 선택이 있습니다. 연년생 자매를 키우느라고 영유아기 때는 아버지도 육아에 참여했지만, 교육과 치료에 대해서는 어머니의 '독박돌봄'이 이어졌습니다. 학교에 어린 지호를 입학시키고 '복도엄마', '청소엄마'*로 지냈습니다. 학교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두 자녀를 키워왔습니다. 잘못된 행동은 그 자리에서 바로잡고, 필요하다면 길 위에서도, 대중교통 안에서도 멈춰 세웠습니다. 타인에게 잘못하거나 피해를 주는 상황, 위험한 상황, 길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동시에, 세상의 시선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두번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이런 단단한 양육 태도는 아이를 지키는 방식이었습니다.
* 복도엄마, 청소엄마 :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학교에 들여보내고 복도에서 서성거리거나, 수업후 청소를 도맡아하는 발달장애인의 엄마를 지칭합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녀가 학교생활을 잘 할지, 놀림을 당하지는 않을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자녀의 주변에 머물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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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모님의 가장 크고 힘있는 지원은 장애인부모운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부모운동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악동작 지회가 생기고 회원 가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2016년 서울시청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정책 마련을 요구하며 42일간 노숙 농성, 26명의 릴레이 삭발이 있었습니다. 이 농성에 평소 알고 지내던 엄마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 머리수라도 채워주려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농성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이 농성은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설치 등 서울시 발달장애인 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역사적 투쟁입니다.
나중에 관악동작 지회가 관악지회와 동작지회로 분리되면서 임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임원을 맡은 후에는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장애인부모연대의 집회에 꼬박꼬박 참여합니다. 친정엄마의 치매 발병으로 한동안 부모연대 활동을 중단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다시 임원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시작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었고,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지호 한 사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비슷한 삶을 살아갈 수많은 지호들을 위한 시간입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그 절박한 마음이 거리에서 연대로,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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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화요집회에 참석한 지호 작가의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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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작가의 부모님은 그림을 그리는 자녀를 지원하는 비법으로 무던히 참고 인내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다보니 조금씩 길이 트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조급해 했지만 지금은 기다림과 인내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주 천천히 따라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자녀의 속도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이 가족이 찾아낸 방법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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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고, 정보력 부족으로 공모전 준비, 예술인활동증명 등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해서 부모님은 지호 작가에게 미안함마저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디지털이 낯설고 아날로그에 익숙한 세대라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에 따른 정보력 차이는 작가 지원에 큰 걸림돌로 다가옵니다. 날로 발전하는 IT 기술, AI로 인해 정보의 바다는 점점 크고 넓어지는데, 이 속에서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호 작가의 개인전을 위해 스페셜아트가 제공한 지원은 큰 도움이 되었고, 그 밖에 공모전이나 전시회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데 도움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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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지호 작가의 미래는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자립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훈련과 연습을 자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작가로서는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1년에 한 작품이라도 컬렉터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작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스페셜아트에서 매일 작업을 하니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부모님은 5년, 10년 후를 생각하지 않고 오늘, 내일을 충실하게 살자고 합니다. 지호 작가가 자립을 하면 여행과 등산을 많이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어쩌면 지호를 쫒아다니고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자녀가 독립해서 분가를 해도 자녀의 집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보통의 엄마 마음일 것입니다. 하물며 장애를 가진 자녀가 자립을 해도 불안하고 못미더워서 학령기 때 했던 복도엄마, 청소엄마를 성인기까지 연장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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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스페셜아트 <울림전>에서 지호 작가와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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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특별한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다리는 사람, 남는 선택을 하는 사람, 그리고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로 나아가는 사람. 그 곁에서 김지호 작가가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김지호 작가의 그림을 본다면 그 안에는 단순한 색과 형태가 아니라 이 모든 시간이 함께 담겨 있을 것입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알아보는 것. 지호 작가의 그림은 오래 바라볼 수록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이 이야기를 읽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응원입니다. 이 이야기가 조금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천천히, 함께 지켜봐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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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작가가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표출하는 방식을 알아맞춰봅시닷!!!
김지호 작가는 스스로 작업 종료를 알려주는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김지호 작가가 자신의 판단으로 그림을 끝내고 나서 하는 말은?!
정답을 아시는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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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호 작가 작품에 대해 영상에서 설명한 큐레이터입니다. 예전에 찍었던 영상인데, ESSAY 도중 제 얼굴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 스페셜아트 작가님들 소식 꼭 챙겨보고 있습니다. 늘 작가님 그리고 가족분들 모두 응원합니다.
👩🏫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같은 부모로서 동일한 마음입니다. 모두가 차별없이 어울려 살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응원할 수 있는 건강한 내일을 기대합니다.
🤡 피드백 많이 보내주세요!!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꾸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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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흔적을 남기는 예술을 위하여hello@specialarts.co.kr서울시 동작구 양녕로 271 3층 스페셜아트 02-812-1762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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