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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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대 예방의 날
지난 6월 22일, [제1회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주최한 이 날 행사는 장애인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고, 장애인학대 예방의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은 2005년 6월 22일,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장애학생 인권침해와 성폭력 사건이 신고된 일을 계기로 지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이 사건은 공지영 작가의 소설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도가니'를 통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행사를 빛낸 장애예술인, 장애인가족의 작품
이 기념일의 상징은 해바라기입니다. 스페셜아트 이소연 작가는 <해바라기> 작품으로 행사를 빛냈습니다. 두드리고, 만지고, 냄새 맡는 작가의 상동 행동이 밝은 생명력으로 피어난 작품입니다. 행사장의 포토월과 배너를 소연 작가의 해바라기로 꾸몄고, 별도 공간에서 작품 원본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어머니이기도 한, 김미진 작가의 캘리그라피는 장애인이 존중받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씨로 표현했습니다. 장애자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어머니는 글씨를 쓰며, 사랑과 기다림의 언어를 한 획 한 획에 담았습니다.
교정과 통제가 아니라 존중이 장애인학대 예방법
스페셜아트 김민정 대표는 소연 작가의 상동 행동이야말로 작가가 대상을 이해하고 관계 맺는 고유한 방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장애인의 남다른 행동이 교정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을 때 예술이 되고, 존중이야말로 학대 예방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 상동 행동: 외부 자극 없이 특정 동작, 소리, 또는 행동 패턴을 특별한 목적 없이 틀에 박힌 듯 반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나 발달 지연을 겪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며, 불안감을 진정시키거나, 부족한 감각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지로 멈추게 하지 말고, 주의를 다른 것으로 돌리게 하거나, 대체 행동을 하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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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의 포토월을 장식한 이소연 작가의 해바라기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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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 선 이소연 작가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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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동행
장애예술인이 재능을 꽃피우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려면 작품 활동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공정한 계약, 기업.기관과의 신뢰할 만한 협력, 그리고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적 기반이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페셜아트는 지난 7월 3일에 법무법인 라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번 업무협약은 장애예술인이 더욱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첫걸음입니다.
업무협약 내용
법무법인 라움은 법률 자문과 지원을 함께 하며, 기업.기관과 장애인 작가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협력 구조를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저작권 보호와 라이센스 계약 관련 법률 자문, 작품 전시.렌탈 및 저작권 침해 관련 법적 분쟁의 예방 및 대응, 노무.근로관계 자문 및 노무사건 대응, 사회공헌 프로그램 운영 등에서 전문성을 더함으로써 장애예술인의 권익 보호와 지속가능한 고용 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스페셜아트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관과 협력하며 장애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경제적 자립이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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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3. 법무법인 라움에서 업무협약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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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아트 작가 이야기]
스페셜아트 소속 작가들은 어떻게 그림에 입문하고 작가가 되었을까요? 평소에 작가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며,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작가가 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리가 펼쳐지니, 가만히 귀를 기울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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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가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림을 업(業)으로 삼는 과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족의 헌신, 사회의 관심, 그리고 작품을 바라봐 주는 사람들의 응원이 함께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심안수 작가는 어릴 때부터 종이와 색연필, 크레파스를 손에서 놓지 않고, 놀이 하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부모님, 다양한 기회를 열어준 특수학교와 복지관, 작가의 그림 세계를 존중하고 성장시키는 에이전시, 든든한 응원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은 안수 작가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2013년에 첫전시를 한 이래 지금까지, 14년차 작가로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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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작가의 그림 이야기는 그림책에서 시작됩니다.
연필을 잡고부터 꼬마 안수는 종이와 색연필을 놀이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스케치북을 주면 그 자리에서 한 권을 다 그릴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스케치북을 아예 박스로 사주었습니다. 여행갈 때는 장난감과 함께 스케치북과 색연필도 챙겼습니다. 자유롭게 종이 위에 선을 그리고, 면을 색칠하던 그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또한 그림책을 보는 것도 즐겼는데,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면 따라 그렸습니다. 이런 활동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2025년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주최한 [제18회 장애인 독후활동대회]에서 그림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림책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를 읽고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 장애인 독후활동대회: 국립장애인도서관이 2008년부터 장애인의 독서 의욕을 고취하고 지속적인 독서 활동으로 올바른 정서 함양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한 대회입니다. 과거에는 장애아동.청소년 대상의 독후글로 참여를 제한했지만, 18회부터는 성인도 참여할 수 있고, 독후그림도 허용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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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2025. [손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독후그림, 종이에 마카, 27.2X39.4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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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놀이처럼 그리던 안수 작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매일 그림일기를 썼습니다. 초등학교 일기는 하루 일과 중 기억에 남는 일을 골라, 당시의 상황,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꾸미지 않고 쓰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안수 어린이의 그림 일기는 초등학교 일기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일상 상황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의미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구성하고,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림일기를 통해 1일 1드로잉을 하는 내공은 미술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하루 일과를 기록하면서 관찰력과 표현력 등 예술적 잠재력이 확장된 것입니다. 장애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나 상상을 그림으로 자유롭게 분출하였습니다.
그림 내공을 쌓아가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주일 예배를 다니던 극동교회 로비에서 친구와 함께 2인전을 열었습니다. 소박한 전시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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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방과후 미술교사를 따라 나가던 화실에서 큰 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롭게 붓질을 반복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림 덕분에 안수 작가의 사춘기는 수월하게 지나갔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붓질하면서 마음을 달래주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비장애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장애청소년도 사춘기를 겪는데, 공격성, 우울, 사회적 위축 등의 증세가 표출되기도 합니다. 다수의 학술 연구에서, 청소년기의 예술 활동이 부정적 정서와 행동을 완화시키는 조절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정답이나 사실적인 묘사 압박이 없는 추상 미술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정서적 해방구가 됩니다. 맞고 틀린 정답이 없기 때문에 창작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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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 시절, 안수 학생의 주변에는 그의 재능과 성실함을 알아챈 특수교사, 사회복지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안수 학생에게 도예를 권유하고, 공모전이나 사생대회에 나가도록 독려했습니다. 안수 작가는 [제14회 서울특별시 지적장애인 문화마당 한마당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주위의 소개로 2013년 강남장애인복지관의 방과후 미술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방과후 미술수업을 계기로 안수 작가는 잠실창작스튜디오 프로젝트A에 참여했습니다. 현대 미술 작가 라오미로부터 창작 멘토링을 받고, 그 결과물을 서울시민청에 전시하면서 공식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전시장에서 처음 "작가님"이라고 불렸을 때,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누군가가 구매해 갔을 때, 비로소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았다고 합니다. 김춘수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서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듯이, 작가 호칭이 장애예술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고유한 의미를 갖게 한 것입니다.
* 강남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의 능동적인 참여 확대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내 최초의 장애인문화예술특화복지관입니다. 지금이야 많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예술인을 발굴.양성하지만, 당시만 해도 장애인이 취미.여가가 아니라 작가로 예술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 잠실창작스튜디오 프로젝트A: 예술(Art)과 가능성(Able)의 'A'를 상징하는 장애아동.청소년 미술 멘토링 프로그랩입니다. 서울문화재단 공모를 통해 선발된 장애아동과 현업 예술가가 1:1로 매칭되어 창작 멘토링과 공동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장애아동.청소년의 잠재된 재능을 발굴하고,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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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안수 작가가 이제는 그림을 직업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스케치북이 없으면 연습장 모퉁이나 A4 용지에 작게라도 그렸습니다. 책이나 TV, 비디오의 한 장면을 옮겨 그리는 일도 즐겨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안수 작가가 이제는 그림 그리는 활동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그림 그리는 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주말과 공휴일에는 "근무 시간이 아니다"라며 붓을 놓는 철저한 직업 의식(?)을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심안수 작가에게 이것은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취미였던 그림이 삶의 중심이 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직업 예술가는 창작의 열정을 넘어 규칙적인 출퇴근, 자금 관리 등이 수반되는 노동입니다. 예술가라고 해서 밤새 홀로 창작에 몰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처럼, 꾸준한 창작과 관리를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견고히 쌓아가는 태도가 요구됩니다. 근무 시간을 인지하고, 철저히 준수하는 것은 직업 예술가의 시간 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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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작가의 하루는 꽉 차 있습니다. 평일에는 일주일에 3일, 홀트강동대학에서 운동, 바리스타, 자립기술, 바둑, 생활요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오후에는 직업인으로서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일주일에 2번 헬스장에서 러닝머신과 자전거로 건강을 챙깁니다.
주말에는 또 다른 루틴이 기다립니다. 토요일 오전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동네 친구분들과 함께 올림픽공원을 걷고 카페에서 티타임을 즐깁니다. 일요일 아침에는 항상 9시 미사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은 정해진 순서로 마무리됩니다. 성당의 미사 중에서 복음 구절을 컴퓨터로 입력하고, 종이에 프린트해서, 큰 소리로 낭독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낭독을 권합니다. 이 의식 같은 시간이 끝나야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신앙이 일상의 리듬이 된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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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작가의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익살스러운 동물,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꽃과 나무입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동물 그림이나 풍경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회화는 정교한 묘사보다 생명력과 활기를 전면에 드러내며, 일상의 풍경을 보편적인 기쁨과 위안의 장면으로 변모시킵니다. 화면 가득 피어나는 꽃과 동물 캐릭터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즉각적인 친근감과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안수 작가는 친숙한 대상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환기하며,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시각 언어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또한 그림책을 즐겨읽고, 매일 밤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안수 작가는 현실과 상상, 신성함과 유머, 일상과 이야기의 세계가 하나의 장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포개집니다. 그의 화면은 경계를 넘나듭니다. 상상과 믿음, 유머를 하나의 언어로 엮어내며, 복잡한 현실을 부드럽게 해석하는 자신만의 시각적 세계관을 확장해 나갑니다.
안수 작가는 자신이 기억하는 행복한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재구성하며,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화면 위에 펼쳐 보입니다. 밝은 색채와 반복되는 자연의 형상, 익살스러운 표정의 캐릭터들은 화면 전체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에너지를 채웁니다. 그 안에는 작가가 바라는 세계, 즉 서로가 공존하고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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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스페셜아트 작업실에서 밑그림 작업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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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SKYWALK, 심안수 작가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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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작가에게는 독특한 그림 습관이 있습니다. 동물을 그릴 때 반드시 눈썹을 그립니다. 사람의 얼굴처럼. 동물에게서 사람의 표정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 작가가 그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면서 그리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작가만의 전달 방식, 소통 방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작업 방식도 독특합니다. 매일 1일 1드로잉을 먼저 하는 것이 작업 시작의 의식입니다. 드로잉 전용 스케치북에 먼저 드로잉을 하고, 같은 그림을 수채화로 다시 한 번 그린 다음에야 캔버스 작업으로 넘어갑니다. 캔버스에는 바탕색을 먼저 칠하고, 연필 드로잉을 한 뒤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하고, 아크릴 마카로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안수 작가는 누가 자신의 그림에 개입하거나 지적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타인의 직접적인 개입이나 지적을 '구박'으로 받아들이는 등 작가로서의 자존감과 프라이드가 강합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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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심안수 작가는 그림을 그립니다.
누군가에게 계절 인사를 건네기 위해,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세상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그림은 그에게 언어이자 편지이고,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기술보다 먼저 마음이 보입니다. 희망과 긍정이 보이고, 누군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보입니다.
안수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작가만의 표현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안수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기분 좋은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하고 싶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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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야기, 가족]
작가로서 계속 작업을 하려면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작가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주변 사람들의 몫도 큽니다. 가족은 작가의 가장 든든한 베이스캠프, 치어리더이죠. 스페셜아트 소속 작가의 가족은 작가와 어떻게 일상을 보낼까요? 작가의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묘책을 쓸까요? 작가와 가족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소망할까요? 특별한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는 가족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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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부모님은 오랫동안 한 가지 양육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고 잘한다고 칭찬하고 사랑으로 지켜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비교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술을 전공한 적 없는 부모님에게 안수 작가의 작업을 지원하는 일은 늘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색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몰라 답답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고, 매 순간을 즐기려고 했어요." 돌아보니 힘들었던 순간보다 좋은 점을 더 많이 기억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가족이 안수 작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기술이나 조언이 아니라, 믿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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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작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알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일단 시작하면 잘 하는 편입니다. 자폐성장애인 특유의 올곧은 성실성이 작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등학생 때 그림일기를 매일 쓰고, 지금도 1일 1드로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그린 그림 외에도 초등학생 때는 피아노, 첼로를 배워서 공연까지 했고, 중.고등학생 때는 수영과 도예를 하고, 제과제빵 경진대회에 출전하고, 장애인복지관에 다니면서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한 분야만 파고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곧잘 해내는, 팔방미인 또는 르네상스형 인재 같습니다. 그런데 안수 작가가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하려면 가족, 특히 어머니가 전적으로 매달려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여동생까지 돌보면서 안수 작가를 뒷바라지 하려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안수 작가가 좋아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모님은 평소 '즐겁게 살자', '행복하게 살자'라는 인생 모토를 갖고 있어서, 시키지 않아도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그리는 그림을 선택하고 다른 활동은 과감하게 접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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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작가가 스페셜아트에 안착하기 전, 우체국 우편물 분류 작업을 계약직으로, 불연속적으로 5년 정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자폐성장애인에게는 우편물 분류가 가장 흔한 일자리였습니다.
우체국에서 일하면서도 그림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체국 우편물 분류는 돈을 버는 일이고, 그림은 돈을 써야 하는 활동이지만, 부모님은 그림으로 최종 진로를 결정할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애가 뭐라도 할 수 있다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지원한다"는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자녀를 양육하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이런 심정으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림이 일자리가 되고 지속적인 고용으로 이어지면서 달라졌습니다. "미술 작가라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고 편안해졌어요."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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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페셜아트와의 오랜 인연이 시작됩니다. 2013년부터 강남장애인복지관 방과후 미술수업에 다니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강남장애인복지관의 재능 육성반에 선발되었습니다. 이때 김민정 대표를 만나고, 예술강사와의 1:1 멘토링을 통해 다양한 재료 탐색과 방법론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2015년 김민정 대표가 스페셜아트를 설립하고 공모한 작가에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셜아트 제1회 울림전에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14년간 함께 하며 전시와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거기 다녀??" 라며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부모님은 안수 작가가 편하고 즐겁게 스페셜아트에 다니는 것을 우선적으로 중시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이런 저런 조언이나 충고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낀 부모님은 스페셜아트를 믿고 작가의 성장을 기다립니다.
스페셜아트 초기 멤버로 활동한 때에는 김민정 대표가 '내 아이의 선생님',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안수 작가 가족에게 스페셜아트는 단순한 기관이 아닙니다.
부모님은 변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작가의 성향을 존중하고, 관계와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일을 도모하기보다 오랫동안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스페셜아트의 멘토링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작은 크기의 작업을 위주로 하지만, 스페셜아트에서는 큰 캔버스에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든든하다고 여깁니다. 14년간 지속된 믿음의 세월은 아래 두 작품 비교에서 드러나듯이, 불과 1년 사이에 작품 호수가 100호로 커지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확장해 나가는 성장으로 증명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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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남극에 있는 바다>, 2024, 종이에 아크릴, 50.6x40.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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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창세기> , 2025, 캔버스에 아크릴, 145.5x112.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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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아트에서 기업연계고용으로 일하게 되면서, 안수 작가는 명실상부한 직업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작가 자신이 스페셜아트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로 인식합니다. 그런데 하루 3시간 근무 또는 4시간 근무의 개념이 '지나치게 잘 잡히면서' 근무시간 외에는 "퇴근했어요!", "주말이에요!" 하면서 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변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렸습니다. 그림이 놀이였고, 그림 도구는 장난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근무 개념이 각인되면서, 정해진 시간에만 그리다보니 작업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아쉬워합니다.
또한 한계를 두지 않고 깊게 파고 들거나, 더 자유롭게 그렸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며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모습을 안타까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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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작가 가족의 꿈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작은 작업실을 하나 마련하는 것입니다. 혼자 작업을 마치고 스스로 정리한 뒤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공간. 가끔 그룹전에 참여하고, 때로는 개인전을 열며 작가로 살아가는 일상.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오래 함께 사는 것을 바랍니다. 그 소박한 바람 속에는 사실 아주 큰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가진 예술가로 살아가는 미래. 그리고 그 길을 가족과 함께 오래 걸어가는 미래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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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안수 작가와 어머니는 영국에서 졸업 전시회를 하는 여동생/딸을 만나기 위해 8박 11일의 영국/프랑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안수 작가에게는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이자 거대한 심리적 도전이었습니다. 익숙한 울타리를 넘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마주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이 도전을 앞두고 안수 작가는 극심한 불안을 겪었습니다. 여행 직전까지 "안 가겠다"고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여행용 트렁크를 숨겨두고 야금야금 짐을 싸야만 했습니다. 14년 차 베테랑 예술가의 당당함 이면에 낯선 환경에 대한 ‘여행 초보’의 두려움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거대한 도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예상하지 못한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전자여행비자 신청 어플리케이션이 안수 작가의 여권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긴급여권 발급을 위해 사진을 100번도 넘게 찍어서 가까스로 비자를 받았습니다. 100번이 넘는 촬영 요청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었으나, 안수 작가는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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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작가의 여동생은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주얼리 아트(Jewelry Art)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에 졸업 전시회를 통해 데뷔한 신진 작가입니다. 오빠 안수는 2013년에 데뷔하여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14년차 선배 작가입니다.
평소 오빠 안수는 여동생에게 특별한 우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조언은 구박이나 잔소리로 생각하지만, 영국 여행 중에 여동생의 지적에는 즉각 수긍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홀로 타국에서 공부하는 동생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고, 어엿한 예술적 파트너로서 동생의 판단을 존중했습니다.
또한 안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희망과 긍정을 전달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동생이 앞으로 밟아갈 예술가로서의 삶이 힘들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응원할 것입니다.
여동생 회은 작가는 안수 작가가 가장 예뼈하는 가족인 동시에,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낯선 땅에서 자신의 길을 훌륭하게 개척해 가는 존경스러운 예술가입니다. "네가 좋아하는 걸 해라"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처럼, 동생도 예술을 통해 즐겁게 소통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오빠이자 선배 작가로서의 진심어린 응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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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영국, 심안수 작가의 동생 심회은 작가의 졸업전시회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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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외여행은 안수 작가의 신체적 인내심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비장애인에게도 가혹한 14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핸드폰 게임과 스도쿠, 기내 영화관람, 수면 조절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견뎌냈습니다. 좁은 기내 환경은 지루함과 불안의 공간이 될 수도 있었지만, 안수 작가는 집중과 불안 관리로 잘 이겨냈습니다.
장시간의 이동 중에 생긴 발가락 물집의 아픔도 참아냈고, 무더위 속에서 쉴 만한 공간을 찾아 가족을 기다리는 역량을 입증했습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타인의 리드에 협조하며 일정을 소화한 것은 대단한 인내와 적응입니다. 엄청난 인파와 예상하지 못한 변수 속에서 가족의 조언을 수용하고 자신의 욕구를 조절했습니다.
귀국 후 안수 작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해외 경험을 엄청나게 자랑하면서 성취감을 드러냈습니다. 출발 전에는 안간다고 완강하게 버티더니 말입니다.
어머니는 "전혀 안 해 본 경험을 해 봄으로써 앞으로 더 해봐야겠다", "이제는 안수를 데리고 해외에 나가도 되겠구나", "14시간 비행도 했는데, 이제 못갈 곳이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40도의 폭염을 견디며 직접 목격한 유럽의 강렬한 색채와 풍경은 그의 캔버스 위에서 더욱 화려한 예술적 자산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이 기록이 다른 장애예술인과 가족들에게 '세상이라는 넓은 영토'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작가의 캔버스는 이제 그가 직접 본 넓은 세상만큼이나 더 화려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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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안수 작가가 성장하기까지는 가족의 확고한 철학과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
특히 작가의 주된 양육자인 어머니의 철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즐겁게, 행복하게 살자"는 신념 아래 안수 작가의 선택을 우선적으로 묻고 존중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더라도 곁에서 묵묵히 지원하며, 스페셜아트와 맺은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며, 오랫동안 한결같은 눈길로 지켜왔습니다. 주말마다 산책을 함께하는 등 정서적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타인의 간섭과 개입을 싫어하는 안수 작가가 권위나 지시를 수용하는 유일한 대상으로, 남매의 우애와 훈육이 공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안수 작가의 어머니는 "예술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우리가 전시장에서 전시를 하고,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보아도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몰랐을 수 있는 작은 것에서 기뻐하고, 자녀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감사함을 배운다고 합니다. 안수 작가가 걷는 길이 부모의 삶도 바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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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영국으로 떠나는 여동생/딸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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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양육과 돌봄의 시간 속에서 작가의 부모님이 스스로를 지탱해온 방식은 그 순간에 충실하고 즐기는 것을 반복하는 삶의 긍정이었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게 됩니다. 매 순간 즐기기를 반복했어요. 지금도 이 순간을 즐기고 좋은 점을 더 부각시키면서 힘든 점은 덮고 지나온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안수 작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작가의 가족들에게 어머니가 건네는 말입니다. "앞서간다고 느끼는 누군가의 삶을 추종하지만 말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작은 발전에도 큰 기쁨을 느끼면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우리들이 있다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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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수 작가만의 특별한 하루 루틴을 알아맞춰봅시닷!!!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매일 저녁에 반드시 OO OO을 낭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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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감동적이고 가족들 또한 너무 훌륭합니다. 정말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장애아동에 대해 모를겁니다. 우리 사회가 더 포용력있게 바라봐 줬으면 합니다.
☕ 성재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초등학생이었어요. 성재 작가님이 그린 그림은 색감이 화려했고, 행복하고 마음이 환해지는 울림이 있었어요. 꼭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는 셍각이었는데...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관심갖고 기다려주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아들의 속도대로 성장을 돕는 성재어머니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사랑과 믿음 안에서 기도하며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 훈훈한 느낌이 듭니다.
❤️ 꾸준한 지원과 응원을 해주는 보석같은 가족이야기 감동적이었어요.
👑 너무 바람직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애에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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